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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후반 신입사원 연봉과 잡쉐어링

잡쉐어링 2000년대 후반 신입사원 연봉 기준

2024년 대한민국, 40년 이상 살아오면서 느끼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먹고살기 힘든 한국이라는 점이다. 중소기업 중견기업 대기업 임금 격차도 약 15년 전 내가 취업할 때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아니, 오히려 코로나 이후 대기업 임금 상승이 급격히 올라가면서 그 차이는 더더욱 벌어지고 있다. 지난번 글에도 썼듯이 그 ‘짜다는’ LG도 메이저 계열사면 40대 초반에 ‘영끌’ 연봉 1억이 넘는 시대가 되었다는 사실이 참 새삼스럽게만 느껴진다.

과거나 현재나 먹고살기 힘든 대한민국, 기억을 더듬어서 2000년대 후반이었던 2008년~2010년 당시 대기업과 중소기업 취업 신입 연봉 및 취업난에 대해 끄적여 본다.

2000년대 후반 대한민국 취업난과 잡쉐어링

지금 2024년 대한민국 20대나 30대 초반 사람들이 취업난 때문에 힘들다고 한다. 하지만 내 기억에는 취업난은 항상 있어 왔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 과거 대학교 졸업 스펙과 지금 스펙이 같냐라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닌데, 어찌 되었건 그 시대에도 결국 스펙 경쟁이라는 것은 있어왔고 주어진 여건 속에서 좁은 ‘대기업’ 취업문을 두드린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나보다 더 나이가 많은 학번 사람들이 실제로 더 ‘편하게’ 대기업 취업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거는 그 사람들 이야기이고, 그들도 나름의 고충이 있지 않았을까? 남 이야기까지는 못하겠다.

대략 2009년~2011년 정도 기간에 취업할 때 우리를 88만 원 세대라고 불렀다. 정규직 일자리가 부족해서 인턴이나 단기 계약직 등 비정규직 일자리가 많았는데 그 당시 월급이 88만 원이어서 88만 원 세대라는 말이 많이 돌았다.

2009년 서울경제 88만 원 세대 관련 기사

그리고 내가 취업할 당시인 2008년~2011년 사이에 잡쉐어링이라는 것이 있었다. 잡쉐어링이란 취업난 해소를 위해서 기본 연봉을 낮추거나, 기존 직원들이 기금을 모아서 경제 살리기 운동에 동참하는 정책이었다. 그 당시 관련 기사를 보면 한전 같은 공기업은 기존 직원들이 임금을 반납하기도 했고 건보 임직원 2450명은 월급을 쪼개어서 일자리 나누기 기금 조성 운동을 했었다.

한전 임금 반납기사
건보 임직원 잡쉐어링 동참 기사

공공기관뿐만 아니라 일반 사기업도 잡쉐어링에 동참했는데 은행권의 경우 기금 모음이 아닌 ‘신입’ 연봉 삭감을 단행했었다. 실제로 그때 함께 취업 스터디를 하던 사람이 있었는데 과거 외환은행 (현재 KEB 하나은행) 입사 시 연봉을 많이 삭감 당한 상태로 입사를 했었다.

*그 이후 연봉이 얼마나 회복되었는지는 미지수.

아래의 기사 링크를 보면 굉장히 흥미로운 내용이 있는데 2010년 기사를 보면 저축은행 대졸 초임 연봉이 3,800만 원임에도 불구하고 시중은행은 1,000만 원 적은 2,700만 원 (우리은행) 수준이라는 내용이다. 저축 은행보다 시중 메이저 은행 대졸 초임 연봉이 낮은 이유가 잡쉐어링 동참을 하면서 신입 연봉을 10~20% 삭감했기 때문이라는 기사다.

시중 은행 새내기 행원들의 연봉굴욕

결국 내가 취업할 시기에도 리먼브라더스 사태 (모기지 사태) 등 여러 이유로 취업 상황이 좋지 않았다. 비정규직 세대인 88만 원 세대, 그리고 잡쉐어링. 그것이 과거 취업난의 기록들이다.

*자꾸 의사 이야기를 또 불러오는데 소득 보장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미래 소득 감소 때문에 파업하는 현재 상황을 보면 과거 저런 임금 삭감을 현재 받아들일 사람이 있을까? 취업자 수를 늘리기 위함은 맞지만 누군가는 적절한 스팩으로 연봉 삭감 없이 입사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신입사원 연봉 2000년대 후반 대기업 최상위는?

2008년 이 당시 최상위급 기업은 조선소와 건설사였다. 아마도 리먼 사태 터지기 직전이어서 그런 거 같기는 한데 내가 이것을 기억하는 이유가 있다. 당시에 취업 커뮤니티 중 가장 유명한 곳이 다음 카페 취업뽀개기였다. 지금은 망해버린 다음 포털이지만 그 당시에는 국내 메이저 포털 사이트였고 카페 커뮤니티 역시 활성화된 곳이 많았다.

https://cafe.daum.net/breakjob/NbsQ/5411

아마 카페에 가입하지 않아서 보이지 않을 텐데 위 링크는 마이다스아이티라는 기업의 채용공고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설계도면 같은 것을 만드는 프로그램 개발 업체였는데 기업 분류가 건설업으로 되어 있었나…그랬던 거 같다.

2008년 말 당시 대한민국 최대 취업 커뮤니티인 다음 카페 취업뽀개기에 올라온 공고인데 건설 대기업 최상위 수준 4년제 대졸 신입 연봉 약 3650만 원이라고 되어있다. 이런 글이 올라온 것만 봐도 그 당시 대졸 초임 연봉에 대한 자부심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즉 2000년대 후반 대기업 대졸 초봉 3650만 원이 굉장히 높은 수준이었던 것이다. 물론 그 이후 잡쉐어링으로 연봉 삭감이 된 곳이 많이 나타났지만.

*내가 2024년 글을 쓰면서 저 공고를 찾을 수 있는 이유는 내가 아직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기억하는 이유는 내가 저기 면접에서 떨어졌었기 때문이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그 당시 은행보다 건설 조선소가 정말로 잘 나갔던 거 같다. 결국 업종이라는 것이 돌고 도는 거 아닐까?

첫 직장 연봉과 면접

2008년 말부터 취업 시장에 뛰어든 내가 그 당시 연봉 마지노선으로 잡은 것이 약 2400만 원이었다. 참고로 우리 집 사람은 그때 전문대 졸업 후 회계 사무실에서 일을 했는데 내 기억으로는 연봉이 약 1800만 원 수준이었다.

나는 지방 국립대를 나왔었고 주변 친구나 동기들이 인턴이나 해외 연수로 스펙을 쌓는 동안 마땅히 쌓은 스펙이 없어서 자소서만 죽어라 쓰면서 취업문을 두드렸다. 그 당시 기억나는 기업들을 떠올리면 페이스샵 화장품 회사도 있었고 신한벽지라는 벽지 회사도 있었다. 면접은 지방도 가고 서울도 가고… 기억에 남는 것은 대한전선 면접 전날 서울에 가서 술 먹고 뻗어서 면접을 가지 못했다.

*그 이후 내가 일한 곳이 대한전선에 원료를 공급하던 곳이었는데 여기 부도 때문에 회계 처리 문제로 통화한 기억이 있다.

자소서는 대략 25만 자를 썼었다. 지금은 업체마다 평균적인 글자 수가 몇 글자인지 모르게지만 그때는 특수한 업종을 제외하고는 자소서 글자가 대략 1000~1500자 정도였던 거 같다. 취업 시즌이 상반기 하반기 약 2달씩 있었던 것으로 본다면 4달 동안 자소서를 25만 자 쓴 것이었다.

2009년 티스토리에 남긴 자소서 글

그리고 결국 첫 취업을 졸업 전에 하게 되었는데 그곳이 소위 말하는 빤스런 한 ‘세진 중공업’이었다.

2000년대 후반 신입사원 초봉 연봉

에필로그

원래 이 글을 쓰려고 한 것이 아니었는데 요즘 술을 많이 마셔서 그런가 글을 제대로 쓰질 못하겠다. 누구 말대로 뇌가 썩었나 싶다.

생각해 보면 지금도 ‘헬조선’인 이유가 중소기업 연봉과 근무 환경이 개선이 되지 않은 것이 가장 크지 않을까 싶다.

과거에는 비정규직 88만 원 세대였는데 지금은 최저시급 기준 연봉이 2400만 원이란다. 그런데 중소기업은 그 인상만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중소기업 연봉을 대충 생각해 보면 현재 기준으로 적어도 3500만 원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편의점 알바와 비슷한 곳이 아직도 많은 거 같다.

게다가 대기업은 성과급 파티로 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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