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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직 공무원 친구 이야기

고등학교 친구 중에서 국어국문학과에 다니던 녀석이 있었다. 이 친구는 말이 친구이지 같은 반 녀석들 보다 한 살 많았었다. 왜냐하면 고등학교 시절 몸이 좋지 않아서 1년 쉬었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항상 우리는 ‘언제 저세상 갈꼬’라는 식의 표현을 많이 했었다.

별명도 그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었다. 이 친구는 폐가 많이 좋지 않았는데 내가 2003년 군 입대 당시 면제를 받았고 학교를 다니며 공무원 공부를 준비했었다.

지금은 공무원이 박봉에 민원 갑질에 시달리는 직업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내가 취업을 준비하던 당시였던 2008년~2010년 정도까지는 공무원 열품이 불던 시기였었다.

참고로 그 당시 취업 준비생을 표현하는 키워드는 88만 원 세대였다.

말 그대로 비정규직으로 월 88만 원 받는 세대라는 뜻. 취업 준비를 하던 당시 스터디 모임에서 KEB 하나은행 (과거 외환은행)에 취업을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때…일자리 창출 차원에서 급여를 깍아서 입사를 했었다.

당시 취업이 어려워 사회적으로 일자리 나눔 차원이었는데…용어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잡 쉐어링이었나..)

지방직 공무원 읍면리 ‘썰’

어찌 되었건 몸이 좋지 않았던 친구는 사기업을 포기하고 (학과 특성도 있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고 몇 번 떨어졌지만 결국 9급으로 임용되었다.

지방도 광역시 단위의 도시가 있겠지만 친구가 간 곳은 소위 말하는 ‘군’ 단위의 ‘읍면리’ 였다. (광역시에 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읍면리 단위로 발령이 난 것에 대해서는 내가 공무원 준비를 하지 않아서 특정 지역으로 지원한 결과인지는 잘 모르겠다.)

꼰대 술잔 폭격

선천적으로 몸이 좋지 않아 오늘 내일 할 거 같던 친구였기에 당연히 술을 전혀 마시지 못했다. 그래서 회식할 때 마다 참…무시를 많이 당했다는 말을 많이 들었었다. 지금은 술을 권하는 분위기는 아니겠지만 10여 년 전, 그것도 ‘촌구석’에서 근무를 한다면 ‘술’은 필수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그런 것이었을까?

종종 술자리에서 술에 취한 상급자 (계장이었나 과장이었나…)가 술에 취해 얼굴에 술잔을 몇 번 뿌렸다고 하더라.

*사실 이것도 양반이다. L모 그룹에서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구두에 소주 넣어서 먹인다는 사람도 있었다.

참…요즘도 저런 사람이 있을까 싶은데…저런 사람이 아직도 공직사회에 남아 있다면 더 하지 않을까 싶다.

오물 투척

도시의 진상 민원인은 욕설과 민원 신고로 공무원을 괴롭힌다면 시골 사람들은 어떻게 괴롭힐까?

가끔 뭐 낫 들고 찾아온다는 글도 있던데 내 친구는 건물 앞에 ‘똥물’ 투척을 받고 해당 오물을 치운다고 고생을 했다고 하더라. 사실 시골 사람이 더 하면 더 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고 본다.

조금 벗어난 이야기를 한다면…모든 사람이 그렇지는 않지만…시골 촌사람들이 굉장히 욕심이 많다. 예를 들어서 우리 장인어른께서 산에서 송이를 채집하시는데 바로 옆집 사람 혹은 같은 동네에 사는 친척들이 밤에 몰래 송이를 훔치러 다니기도 한다.

더 어이없는 것은 송이를 훔치지는 않더라도 송이가 나지 않도록 땅을 밟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고 하더라. 그만큼 시샘이 많은 곳이 소위 말하는 시골 촌 동네인데…민원에 대한 불만이 생긴다면…뻔하지 않나 싶더라.

민원실 화단에 물주기

술도 못 마시고, 사교적이지도 않고, 가끔 똥물 세례나 받다 보니 직무가 좀 많이 바뀌었나 보더라. 한 번은 민원실 업무를 맡으면서 화단에 물을 주는데 본인도 이러려고 공무원 준비했나라는 회의감이 많이 들었단다.

이야기했듯이 지금은 공무원이라는 직업에 대한 선호도가 낮아졌지만 2006~2010년 정도까지만 해도 치열하게 준비해서 들어가는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우스갯소리로 비 오는 날에도 화단에 물 주냐고 물어 본 적도 있었던 거 같다.

과일 밀어내기

가끔 뉴스를 보면 농약 사용 문제로 인해 특정 과일이나 채소에 대해 사람들이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무슨 무슨 파동’ 처럼 말이다.

과거에도 친구가 있던 지역에서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판매량이 줄어서 그런지 나에게 과일 한 박스를 보내겠다고 연락이 왔었다.

사실 이런 농산물 관련 이슈는 큰 문제가 없는데 언론에서 갑자기 이슈를 제기하면서 사람들이 꺼려 하는 것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래서 그 당시 혼쾌히 ‘공짜’로 받아먹었는데 생각해 보면 군이나 해당 지역에서 공무원들에게 판매 할당을 시킨 게 아닐까 싶더라.

이거는 나의 그냥 뇌피셜이지만…아무리 그래도 과일을 친구들에게 한 박스씩 공짜로 줄 일이 있을까. 본인 돈이 좀 깨지지 않았나 싶었다. (순전히 개인적인 짐작에 불과)

버티는 사람이 승리자

이 글을 쓰는 이유가 군이나 읍면리 단위의 지방직 공무원을 비하하기 위한 것은 아니고, 생각해 보면 어느 직장이건 버티는 사람이 승리자라는 평범한 진리가 맞는 거 같더라.

월급이 적고 연금 개혁 때문에 과거 보다 못한 대우를 받는 것도 맞고…별의별 일을 다 겪었지만 어찌 되었건 지금은 6급 공무원.

게다가 같은 공무원 맞벌이를 하고 있어서 생활의 안정성이 굉장히 높더라. 물론 지금 현재 상황이 되기 전까지 많은 일을 겪은 것은 맞지만…

40살이 넘어서 늦깎이 첫째를 낳아서 부부 공무원이 육아휴직 중이다. 시골 동네여서 아파트 가격 부담도 거의 없고…육아휴직 하면서 대출받아서 차도 바꿨다고 하더라.

넉넉치 않은 형편임에도 그렇게 한다는 것은 이미 미래에 대한 확실성이 담보가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사람에 따라서 젊은 시절 많이 벌고 많이 쓰는 것이 더 좋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으니. 후자의 상황을 본다면 친구들 중에서 제일 부러운 녀석이라고 생각한다.

내 삶의 기준에서는 여의도에 살면서 LG 에너지솔루션에 다니며 1억 대 연봉을 받는 친구 보다 더 나아 보이기도 하더라.

대학 시절 혹은 사회 초년생 때에는 그저 불쌍하게만 보이던 지방직 9급 공무원 친구가 지금은 부럽기만 하다. 하긴…내가 같은 위치였다면 불평불만 만 하다가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렸을 지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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