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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4일 재량휴업 대신 재량 출근?

초등학교 파업

집 사람이 뜬금없이 9월 4일 체험학습을 할지 등교를 시켜야 할지 고민이라는 말을 했다. 무슨 말인가 싶어서 들어보니 학교에서 가정 통신문이 왔는데 교사들이 9월 4일에 출근을 할지 안 할지 모른다는 내용이었다.

이게 뭐지 하면서 몇 번을 곱씹어 읽어 보았는데 우리 애 학교에서 받은 내용은 아래와 같다.

9월4일 등교 관련 공문 내용

요약하자면 서이초 교사 사건 때문에 9월 4일 휴교를 하려고 했으나 교육부에서 강경 대응을 하기로 해서 정상 수업을 하겠다.

하지만 교사들이 출근을 할지 안 할지 모르겠고, 출근을 안 하면 수업 혼선이 예상된다. 그리고 교사들의 원활한 교육 활동을 위해 지지해 달라.

사실상 수업 개판 될 수 있으니 학교에 보내지 말라는 통신문이었다.

모순점

공교육 세움의 날이라는 단어가 무슨 뜻인지 찾아보지는 않았지만 대충 최근 사건과 뉘앙스로 봐서는 떨어진 교권을 바로 세우고 아이들의 학습 활동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뜻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참 모순적이라는 생각이 안 들래야 안 들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수업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걷어찼기 때문이다.

  • 등교를 해도 교사가 적어서 수업이 어려울 수 있다.
  • 체험학습을 해도 상황에 따라 교사가 정상 출근하여 수업을 할 수가 있다.

뭐 어쩌라는 건지? 결국 공직자로서 교육부에서 불법 행위로 간주하여 징계 등을 할 것을 예고하니, 우회적으로 개인 휴가 사용을 쓰겠다는 건데 그 조차도 누가, 몇 명이나 출근을 하지 알려주지도 않은 것이다.

학습권 보호를 위해 임시 휴업일을 지정하겠다는 학교에서 이도 저도 안 되니 9월 4일 교사들이 출근할지 안 할지 모르겠다고 통보해 버린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본인들이 지키겠다던 학습권은 9월 4일에는 없나?

아니면…학습권이 배울 권리가 아니라 가르칠 권리였나? 후자라면 뭐…애들 수업 안 받아도 된다고 볼 수 있겠지. 어차피 정해진 수업 일수만 채우면 된다고 하니까.

교권

옛날 말하면 좀 웃기지만 간혹 선생님들 중에서 이런 말을 하던 분이 계셨다. ‘학교 다니는 게 장난이냐?’는 말이었는데 밥 먹듯이 결석하는 애들한테 하는 말이었다.

오고 싶으면 등교하고 오기 싫으면 결석하는 곳이 학교냐라는 뜻. 지금은 반대가 된 거 같다.

적어도 9월 4일만 본다면 출근하고 싶은 사람들은 출근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출근하지 않고. 수업은 인원 오는 대로 보면서 그때 혼란이 오든 뭐 하든 알아서 되는 거고.

물론 누군가는 ‘특수한’상황이라고 할 것이다. 나도 평소 학부모 갑질로 마음 상한 분이라면 서이초 사건으로 인해 심적 어려움을 더 느끼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불합리한 부분은 고쳐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이 행위가 올바른 행위냐라고 묻는다면 ‘글쎄’.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저 통신문을 보자마자 ‘요즘 선생들은 수업도 자기 마음대로 빠지네’라는 말이 그냥 튀어나왔다. ‘교사’에 대해 특별히 관심도 없던 나도 이 상황을 보니 ‘교사들 편하네’라는 생각이 그냥 확 들었다.

오히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도 동참하고 싶지만 아이들의 학습권을 위해 정상 수업하겠습니다’라고 하는 곳이 있다면 더 존경받을 수 있지 않을까?

어차피 본인들 목소리 내는 날이 9월 4일만 있는 것도 아니고 교육부에 정식 항의를 하던지, 아니면 수업 끝나고 집회를 하던지, 주말에 모여서 목소리를 내던지 얼마든지 방법은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냥 내팽개친 거 아닌가 싶다. 그것도 ‘전체 쉽니다’라는 강경한 모습을 보인 것도 아니고 ‘우리도 모르니 알아서 체험학습 신청하던지 등교 시키던지’라는 식의 통보를 통해서 말이다.

그리고 분명 초등학교 고학년 중에서는 대충 눈치를 챈 애들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우리 선생님 고생하시네요’라고 하겠지만 누군가는 ‘선생님들 그냥 수업 째고 싶으면 째네’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만약 그런 상황이라면 과연 교권이 다시 자리 잡을 수 있을까? 참고로 우리 애가 1학년일 때 담임 선생님이 수시로 학교에 오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서 애 입에서 나온 말이 ‘우리 선생님은 학교 오고 싶을 때만 온다’였다. 이런 모습이 자주 보인다면 학생들로부터 과연 얼마나 존경받을 수 있을까?

동조

다시 말하지만 정상적인 절차나 승인에 따라서 하루 쉬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법 테두리를 벗어난다고 하더라도 명확히 통지하면 그것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당일 수업의 책임을 학부모에게 전가시키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다. 정상 출근했는데 체험학습을 해서 수업에 빠지는 것은 부모책임, 출근 안 하는데 등교 시켜서 하루 의미 없이 보내는 것도 부모 책임.

누군가는 겨우 하루 가지고 뭐 그리 소란이냐고 할 수도 있다. 그리고 누군가는 ‘네 같은 학부모가 있으니 교사가 힘들다’고 조롱할 수도 있다. 사람이야 생각이 다 다르니까.

하지만 ‘출근할지 안 할지 모르겠으니 너네 부모들이 알아서 정하세요. 그래도 협조해 주면 좋겠습니다.’라는 불명확한 일방적 통보가 공직자라는 위치에서 하는 것이 맞을까? 맞는다고 생각한다면 뭐…그렇다고 치고.

차라리 9월 4일 공교육 바로 세움의 날을 지정한다면 이날 잘못된 아동 학대법 등을 개정하기 위해 학부모들에게 서명을 받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다. 지금처럼 모든 학부모를 ‘잠재적 가해자’로 보면서 ‘등교하지 않는 협조’를 구하는 것 대신 말이다.

아니면 초등학교 수업 시간이 길지 않으니 수업을 정상적으로 하고 오후에 모였다면 적어도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은 없지 않을까.

아…나도 늙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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