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로 건너뛰기
Home » 허자 생각 » 12사단 훈련병 고문치사와 2024년 대한민국

12사단 훈련병 고문치사와 2024년 대한민국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정친인들은 관심 없는) 12사단 훈련병 얼차려 사망 사고 기사. 고문치사라고 하기에는 자극적인 부분이 있지만 사람들 생각에 따라서 고문에 가까운 얼차려 행위로 훈련병을 숨지게 했으니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만도 하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훈련병이 사망할 때까지 얼차려를 시키고 병원 이송도 즉각적으로 하지 않았다고 하니, 흔히 말하는 ‘사실상의 고문’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유가족 마음이야 내가 어떻게 헤아릴 수 있겠냐, 20여 년 전 군부대에서 4/5톤 트럭이 절벽에서 떨어져 다수의 인원이 사망한 사고를 접했던 (같은 여단 소속) 나로서는 참 마음이 좋지 않았다. 군대에서 죽는 것만큼 허망한 것은 없다는 생각을 아직까지고 가지고 있다. 군견보다 못한 목숨 값을 받는 것이 일반 사병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군견보다 목숨 값이 더 높은지는 잘 모르겠다.

2024년 대한민국의 모습

약골 군인 비하

12사단 훈련병이 얼차려를 받다가 사망하였다. 소변에서 검은색 소변이 나올 지경이었고 의학적으로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근육이 녹았다는 말도 있던데 그만큼 극한의 순간까지 얼차려를 받았다는 것은 부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기사를 보니 군 관련 규정을 어긴 얼차려였는 거 같은데 중대장의 잘못을 회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재미난 사실은 이러한 사실에 대해서 모두가 공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 요즘 애들은 약골이다. 나 때는 군장 메고 다 구보를 하였다.”

기사 댓글이나 카페에 돌아다니는 커뮤니티 ‘짤방’을 보면서 정말로 저런 글을 군 전역한 사람이 썼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런 댓글을 다는 본인들이 얼마나 ‘잘나가던 시절’에 훨훨 날아다녔는지는 모르겠지만… 몸이 잘 날아오르니 뇌까지 날아간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사람마다 체력이 다른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군대에서 그것을 다 인정해 줄 수는 없기에 훈련병 시절을 거쳐서 평준화되지 않나. 과거 기억을 더듬어 보면 논산 훈련소에서 단독 군장 행군을 했었는데 단독 군장에 짧은 거리였음에도 불구하고 막사에 도착할 때쯤 정신이 어질어질한 기억이 있었다. 말 그대로 내가 약골이었기 때문이었다. 정말로 살면서 걷다가 쓰러지겠다는 생각은 그때가 처음이었던 거 같았다.

*물론 그 와중에 뚱뚱한 동기들 몇몇은 의무차에 편안히(?) 앉아서 가기도 하더라.

그렇게 생활을 하면서 처음으로 유격 훈련을 갔다. 새벽에 일어나 군장을 메고 유격장까지 행군을 하였다. 그리고 유격 훈련장에 도착하자마자 점심을 먹고 훈련을 바로 시작하였다. 그렇게 며칠 간의 훈련을 끝내고 다시 군장을 메고 부대까지 행군을 하였다. 이때에는 멀쩡했었다. 지금 생각해 봐도 군장 메고 행군해서 훈련까지 하고 다시 복귀하는 과정을 어떻게 했나 싶을 지경이었다. 누군가는 당연한 거라고 해도 나는 약골이었으니까.

병장 때에는 혹한기 훈련 행군을 하였다. 기억하기로 그때 여단장 (우리는 여단이었다.)이 직접 검열한다고 완전 군장을 제대로 하라고 명령했었다. 혹한기 훈련 때 군장은 침낭, 모포가 들어가기 때문에 무게가 상당히 나갈 수밖에 없었다. 이때는 좀 힘들긴 했는데 그래도 꾸역꾸역 별 무리 없이 지나갔었다. 중간에 밥차 끌고 다니던 동기가 침낭과 모포 등을 빼준다고 했는데 그냥 다 짊어지고 행군을 했었다.

결국 군대라는 것이 입대 최저 조건만 충족하면 끌려가는 곳이고, 그 안에서 부족한 사람은 훈련을 통해 체력 등이 올라가는 구조인데 그것을 무시한 저런 발언이 참 이해가 안 가더라. 그리고 12사단 훈련병 얼차려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수준이었는데 ‘원래 군장 메고 구보는 기본이다’ 라는 말을 하는 사람이라면 진짜로 본인 뇌가 머리 뚜껑 안에 있는지부터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12사단 여중대장과 여혐 기사

“여자 중대장이 자기도 못하는 것을 시켰다’ 라는 누가 쓴 글인지도 모르는 커뮤니티 글로 여혐 조장을 한다는 기사가 나오기 시작했다.

아직 제대로 된 조사가 시작되지도 않았고 앞으로 어느 정도의 처벌을 받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사건의 주목도를 헤치는 기사. 설령 여혐 관련 문제가 있다고 보더라도 지금 나올 기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보자. 중대장이 훈련병을 사망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앞으로 어떠한 수사 결과가 나올지, 유가족이 그나마 납득할 만한 처벌이 나올지 아직 아무도 모른다. 어떻게 보면 제대로 된 진상 규명과 조사가 필요한 시점이고 이를 언론이 감시해야 하는데 다른 여혐이라는 것으로 시선을 돌리는 짓을 하는 거 아닌가?

지하철에서 흑인이 불 지르고 도망가면 빨리 쫓아가서 체포하고 피해 정도와 그 이유, 그리고 처벌의 정도를 검토해야 하는 시점에 옆에서 왜 우리는 흑인을 의심하는가 이딴 소리 하는 격이다.

정치인

지난번 영포티 이야기를 잠깐 했지만 개인적으로 여당이건 야당이건, 진보건 보수건 모두 똑같은 인간들이라는 생각이 강하다. 이번 12사단 훈련병 사망 사고 역시 ‘돈’ 안 되는 소재이고, 재수 없으면 ‘여심표’ 잃는 사건이다 보니 여전히 잠잠한 느낌이다. 해병대 수색 대원 사망사고도 안타까운 것이 맞고 진실 규명도 필요하겠지만 12사단 훈련병 사망 사고는 ‘대통령 탄핵’이라는 돈 되는 이슈가 없으니 그냥 관심 없는 거 같다는 느낌이 강하다.

하기야 여당 야당 가리지 않고 전과자가 국회의원이 된 세상에 훈련병 하나 사망했다고 무슨 관심을 가지리. 본인들 자리 지키는 것이 중요하겠지.

아, 그리고 정치인들 자녀들은 군대를 안 가거나 다른 보직으로 빼거나 든든한 정치인 빽이 있으니 아무도 안 건드리겠네.

2024년 군대 가혹 행위에 관대한 대한민국

군대 가혹행위는 사병 간에도 있지만 군 간부와 사병 간에도 존재한다. 물론 가혹행위에 대한 이유는 다를 수 있다. 단순 돌아이가 그랬을 수도 있고 이 사건의 경우 정말로 남자를 혐오하는 여성 중대장이 일부러 골탕 먹이려고 했을 수도 있다. 사실 이 부분은 그 심연을 들여다봐야겠지만 아무리 조사를 한 들 사람 마음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냥 뭐 이렇게 될 줄 몰랐다, 얼차려나 군기 관련 규정을 몰랐다고 대충 넘어가겠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12사단 훈련병 사망 사고를 통해서 다시 본다면 이유와 결과 (향후 처벌이나 징계 정도) 를 떠나서 2024년 대한민국은 군대 가혹 행위에 대해 참으로 관대한 국가인 거 같다. 가혹 행위를 당한 사람이 약하다고 손가락질하고, 가혹 행위 사건이 아닌 커뮤니티에 누군지도 모를 사람이 쓴 글 등으로 뜬금없는 여혐 물타기를 하는 언론사가 있고, 관심 없는 정치인들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혹 행위 당사자를 공항 장애 등의 이유로 멘토도 붙여주는 참으로 관대한 나라인 거 같다.

이렇게 관대한 대한민국 사회에서 왜 억울하고 불쌍한 군 장병 유가족만 눈물을 흘리는 것일까? 더 암담한 현실은 그 눈물조차 조만간 잊혀질 것이라는 사실이다.

명백하게 비난받아야 할 사건 사고임에도 조롱이 넘치고 분열이 파다하다.

이런 대한민국을 떠나고 싶어도 못 떠나는 내 능력 때문에 나중에 이곳에서 살아갈 내 자식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다.

2024년 대한민국은 개새끼들 전성시대가 된 느낌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댓글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